산업 산업일반

[엔저, 위기냐 과장이냐] "원·엔 환율 30% 하락후 1~2년내 위기 오지 않은 적 없다"

조은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9.28 17:24

수정 2014.09.28 21:44

[엔저, 위기냐 과장이냐] "원·엔 환율 30% 하락후 1~2년내 위기 오지 않은 적 없다"

"헤이, 미스터 구로다, 윤전기(화폐 인쇄) 언제까지 돌릴거요?" 지난 19일 호주 캔버라.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총재를 만난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불만 섞인 인사를 던졌다. 주요20개국(G20)재무장관회의를 겸해 열린 한중일 3국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가 열리던 중간, 공식 마이크를 치운 자리였다. 구로다 총재는 하반기 추가 양적완화(QE)카드를 만지작 거리는 상황. 그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오를 때까지 윤전기를 돌리겠다는 답변을 건넨 것으로 전해졌다. 한·중·일 재무장관회의에서 엔저는 논의되지 않았다. G20재무장관회의에서도 주요국들은 일본의 엔저에 침묵했다.


그러는 사이 엔화의 하강속도는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지고 있다. 원·엔 환율은 지난 26일 100엔당 958.43원에 거래됐다. 전날 외환시장에선 100엔당 925원까지 하락하면서 6년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국제투자은행(IB)들은 내년 하반기까지 엔저가 심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모간스탠리는 내년 3·4분기 중 100엔당 873원까지 내려갈 것으로 전망했으며 ING(894원), 씨티(898원), JP모간(882원) 등 4곳은 800원 후반대로 하락할 것을 분석했다. 심지어 BNP파리바는 1년 안에 내년 3·4분기 100엔당 786원까지도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엔저, 위기냐 과장이냐] "원·엔 환율 30% 하락후 1~2년내 위기 오지 않은 적 없다"

■한은 기준금리 인하 요구 거세져

당국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28일 정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 26일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책당국과 경제전문가들이 모여 엔저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회의를 열었다"고 밝혔다. 환변동보험 확대나 일본으로 수출하는 농수산물 가격경쟁력 확보 등이 주로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부 안팎에선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해 원·달러 환율상승을 유도, 엔저효과를 상쇄시키는 방법 외엔 뾰족한 수가 없다는 분위기다. 원·엔환율이 원·달러, 엔·달러를 기반으로 도출되는 만큼 시장개입도 가능하지 않다는 얘기다. 동국대 강삼모 경제학과 교수는 "일부에선 정책당국이 개입해야 한다는 요구도 있지만 2003~2004년 과다한 외환시장 개입 비용은 예상보다 컸다"면서 "내수진작·제품경쟁력 제고 등의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엔화변동, 韓에 세 번의 선물과 세 번의 위기

역사적인 경험으로 볼 때 엔고의 종식은 한국경제 호황의 끝이었고, 어김없이 위기가 도래했다. 1989년, 1997년, 2008년이다.

플라자합의(1985년) 직후 1986년부터 1988년까지 첫 엔고 시기, 한국의 수출은 1985년 303억달러에서 1988년 607억달러로 3년 새 두 배가 되고, 주가는 1000포인트를 돌파했다. 그러나 이 같은 호황은 독이든 성배와 같았다. 이듬해인 1989년 엔저가 발생하면서 한국의 연평균 수출증가율은 전년도 28.4%에서 2.8%로 곤두박질쳤다. 두번째 엔고는 1990년대 중반에 일어났다. 엔고의 종식과 함께 1997년 한국경제는 최악의 시련기로 접어들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원화절상과 엔저현상이 지속된다면 향후 6개월부터 2년 내 한국의 무역수지는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품의 수명주기가 짧은 의류·신발 등이 먼저 타격이 오고, 가전·휴대폰 등으로 옮겨갈 것이란 얘기다.

일본을 비롯해 한국 등 주요 수출국가들은 달러표시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한다. 원·달러 환율의 하락은 삼성전자·현대차 등 수출기업에 악재다. 전과 같은 물량을 팔아도 손에 쥘 수 있는 원화수익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반면 엔·달러 환율상승으로 지난해 대규모 흑자를 기록한 도요타 등 일본 기업들은 작년 6월 한차례 제품가격(달러표시)을 내렸을 뿐 고스란히 환차익을 챙기고 있다.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 회장은 "도요타,파나소닉 등이 소생을 했으며 그 다음엔 시장수요를 확대하기 위해 달러표시 가격을 더 떨어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선 일본의 엔저가 일본경제의 추락을 암시하기도 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또 한국산 제품이 이전보다 기술력과 브랜드에서 경쟁력을 갖춘 만큼 과거와 같이 일본제품에 속수무책으로 밀리진 않을 것이란 주장이다

■'슈퍼달러' 엔저엔 어떤 영향

엔저 위기론자들은 일본은행의 하반기 추가 양적완화, 일본기업의 제품가격 인하가 이뤄질 경우 한국수출기업의 채산성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들은 철저하게 경험론에 근거한다. 원·엔 환율이 30%가량 떨어진 이후 1~2년 내 위기가 오지 않은 적이 없다고 강조한다. 급격한 엔저이후 한국경제에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일종의 나비효과다.

신세돈 교수는 "일본과 제3시장에서 경합하는 품목은 5000억달러 수출 규모 중에서 최소한 500억~1000억달러 정도"라며 "이 중 약 20~30%가 타격을 입을 것으로 가정하면 500억달러 정도는 현재보다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최근 여기에 '슈퍼달러'라는 더욱 복잡한 변수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이달 양적완화 종료를 예고한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앞당겨질 경우 달러 강세가 일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물론 슈퍼 달러 대두 가능성에 대해서도 전문가들 간 전망은 다소 엇갈린다.

그러나 슈퍼달러가 온다면 원화와 엔화 어느 쪽이 더 빨리, 더 많이 약세로 가느냐에 따라 두 화폐 간 교환가치가 달라질 것이란 분석이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슈퍼달러가 원·달러환율 상승을 만들겠지만 그보다 먼저, 엔화약세가 빨리, 크게 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론도 있다.
원종현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슈퍼달러가 온다면 현재 원화가치가 고평가 돼 있다는 점에서 원하가 더 하락하게 되며, 그로 인해 엔저가 약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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